“혈압약을 한 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나요?”
진료실에서 정말 많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정리를 해보면요.
- 고혈압은 원칙적으로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입니다.
그래서 약을 시작했다면, 대부분은 장기·평생 복용을 기본 전제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 그렇다고 해서
“누가 됐든 무조건, 같은 약을, 같은 용량으로, 평생 똑같이 먹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 진짜 위험한 건
본인이 멋대로 끊는 것이고, - 반대로
생활습관을 충분히 바꾸고, 의사와 계획을 세워서 ‘감량·중단’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소수의 경우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축으로 해서
“끊는 사람 vs 끝까지 먹는 사람”의 차이를 차근차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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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혈압을 ‘평생 관리하는 병’이라고 할까
전 세계 고혈압 진료지침은 고혈압을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 봅니다.
2024년 유럽 ESC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 대부분의 성인에서
약을 쓰는 동안 목표 수축기 혈압을 120–129mmHg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권고합니다. - 다만, 고령·허약한 노인에서는
“가능한 한 낮게(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를 원칙으로 하되,
본인이 잘 견디는 범위 안에서 조절하라고 덧붙입니다.
우리나라 대한고혈압학회(2018 가이드라인, 2022 업데이트)도
고혈압을 장기 치료가 기본인 만성질환으로 전제합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혈압이 괜찮아진 건, 내 혈관이 새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약과 생활습관 덕분에 눌려 있는 상태다.
즉, ‘완치’라기보다는
“계속 관리해야 안정되는 병” 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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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끊으면 어떻게 되나 – 숫자로 보는 현실
끊고 나서도 버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항고혈압제 중단을 다룬 체계적 문헌고찰(여러 연구를 모은 분석)을 보면요,
- 약을 끊고 6개월 지났을 때
정상혈압이 유지되는 비율이 평균 약 37%, - 2년까지 가면 약 26% 정도로 떨어집니다.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엄선된 저위험·경증 환자를 골라서
의사가 계획적으로 끊게 해도,
3명 중 1명 정도만 6개월 이상 버티고,
4명 중 1명 정도만 2년 이상 버틴다.”
즉,
장기적으로 완전히 약을 안 먹고 가는 사람은 소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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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약을 끊었다고 바로 뇌졸중이 터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비교해 보면 차이가 분명히 납니다.
네덜란드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보면,
- 혈압약을 지속적으로 잘 먹은 사람에 비해
- 중간에 끊거나 비지속적으로 먹은 사람에서
- 심근경색 위험이 약 15% 증가
- 뇌졸중 위험이 약 28% 증가했습니다.
2025년 국내 연구에서는,
- 고혈압 환자 중
항고혈압제 치료가 끊긴 사람에서- 뇌내출혈(뇌출혈의 한 형태) 위험이
지속치료군에 비해 유의하게(약 3배 안팎) 높았습니다.
- 뇌내출혈(뇌출혈의 한 형태) 위험이
이런 연구들을 종합하면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피 한 번 뽑을 때 뜨문뜨문 높게 나오는 그 혈압,
그냥 “조금 올랐네” 하고 넘기는 사이에
심근경색·뇌졸중·뇌출혈 위험이 서서히 올라간다는 것.
그래서 의사들이 “절대 멋대로 끊지 마라”고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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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약은 “갑자기 끊으면” 더 위험해진다
모든 혈압약이 다 같은 건 아닙니다.
특히 두 계열은 “갑자기 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 클로니딘(중추성 교감신경 억제제)
- 장기간 쓰다가 갑자기 중단하면
심한 고혈압, 심박수 상승, 심하면 고혈압 위기가 오는
전형적인 반동성 고혈압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 장기간 쓰다가 갑자기 중단하면
- 베타차단제(프로프라놀롤 등)
- 협심증·관상동맥질환 환자에서
장기간 복용 후 갑자기 끊으면
협심증 악화, 불안정 협심증, 심근경색, 부정맥 등이 보고되어 있고,
이른바 “베타차단제 반동 현상”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협심증·관상동맥질환 환자에서
요약하면,
어떤 약들은 “안 먹는 것”보다
“먹다가 갑자기 끊는 것”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약 중단”은
반드시 천천히, 단계적으로 줄이면서 가야 하고,
어떤 약을 먼저·어떻게 줄일지 역시 의사가 설계해야 합니다.
‘끝까지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경우
다음에 해당하시면,
약을 끊는 것보다는, 잘 맞는 약을 오래 가져가는 쪽이 이득이 훨씬 큽니다.
- 고혈압과 함께
- 뇌졸중, 일과성 허혈발작(TIA)
- 심근경색, 협심증, 스텐트 시술
- 심부전
- 만성콩팥병
같은 심뇌혈관·장기 손상 병력이 이미 있는 경우
-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흡연, 비만, 가족력 등
다른 위험요인이 여러 개 겹쳐 있는 경우 - 진단 당시 혈압이
- 160/100mmHg 이상이었거나
- 2기 고혈압(140/90을 많이 넘는 수준)이었던 경우
- 60–65세 이상, 특히 70대 이후
- 장기 손상이 없더라도
- 나이 자체가 강력한 위험인자라
- 국내외 지침 모두 적극적인 혈압 조절을 권합니다.
이런 분들은,
- “약을 평생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 “어떤 약을, 어떤 조합과 용량으로,
부작용 없이 가장 안전하게 오래 가져갈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그래도 약을 줄이거나, 아주 조심스럽게 끊어볼 수 있는 사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연구와 가이드라인을 종합하면,
다음에 가까울수록 ‘감량·중단 시도’의 후보가 됩니다.
- 고혈압이 초기·경증(1기) 에 진단되었고
- 처음부터 180/110 같은 심한 고혈압은 아니었던 분
- 진단 당시
- 뇌·심장·콩팥·혈관에
뚜렷한 손상이 없던 저위험군
- 뇌·심장·콩팥·혈관에
- 이후 최소 6~12개월 이상
- 체중 감소, 허리둘레 감소,
- 식단·운동·절주가 실제로 잘 유지되면서
- 집·외래 혈압이 120/80 안팎으로 안정된 상태가 계속되는 분
- 약 부작용 때문에
- 삶의 질이 상당히 떨어져
- “이득과 해”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상황
이 조건에서조차,
현실적인 목표는 대부분
- “완전 중단 + 영구 탈출”이 아니라
- 약 개수 줄이기 (3제⇀2제, 2제⇀1제)
- 용량 낮추기
- 경우에 따라 “잠시 끊고 지켜보다가 다시 시작”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 주치의와 “어느 약부터, 어느 정도씩 줄일지”
계획을 세우고 - 줄이는 동안에는
- 최소 주 2–3회 이상 가정혈압을 재어 기록하고
- 혈압이 다시 오르거나, 이상 신호가 보이면
- 바로 되돌리기(증량·재시작)
이 세 가지가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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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습관으로 어디까지 뒤집을 수 있나
생활습관 이야기는 “좋다더라” 수준을 넘어,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있어야 현실적인 기대를 세울 수 있습니다.
체중
체중과 혈압의 관계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 25개 무작위 대조시험:
체중 1kg 감소 ⇀ 수축기 혈압 약 1mmHg, 이완기 약 0.9mmHg 감소.
실제로는
- 5~10kg 정도 체중이 줄면
수축기 혈압이 5~10mmHg 이상 떨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식단(DASH, 지중해식 등)
DASH 식단(채소·과일·저지방 유제품·통곡 위주, 염분 줄이기)은
- 여러 연구에서
수축기 혈압 5–11mmHg, 이완기 3–5mmHg 감소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최근 지중해식 식단도
- 평균적으로 수축기·이완기 혈압을
1–2mmHg 정도씩 낮추는 걸로 나옵니다.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인구 전체로 보면 뇌졸중·심근경색을 꽤 줄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운동
2024년 분석을 포함한 여러 연구를 보면,
- 주당 15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빠른 걷기, 자전거 타기 등)이
수축기 혈압을 3–8mmHg, 이완기 혈압을 2–5mmHg 정도 낮추는 것으로 나옵니다.
최근에는
벽에 기대 서서 앉기(wall sit), 플랭크 같은 등척성 운동도
혈압 감소에 꽤 효과적이라는 데이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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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실적인 기대치는?
체중 감량 + 저염·DASH/지중해식 + 유산소·근력·등척성 운동을
한꺼번에, 그리고 꾸준히 실천하면,
- 수축기 혈압이 10mmHg 안팎까지 내려가는 것은
전혀 비현실적인 수치가 아닙니다.
이 정도면
- 원래 약 한 가지로 간신히 조절되던 분이
용량을 줄이거나, 약을 하나 줄여볼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도 있고, - 아직 애매한 경계혈압 단계라면
약 시작 자체를 미루거나 피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 모든 건 “다이어트 한 달”이 아니라
“몇 달 이상, 가능하면 수년 동안 생활습관이 진짜로 유지될 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고령·허약한 노인에서의 예외 – 너무 낮은 혈압도 문제
반대로, 나이가 많이 들수록
“혈압은 낮을수록 무조건 좋다”는 말도 그대로 적용되진 않습니다.
ESC 2024 가이드라인과 관련 리뷰를 보면,
- 80~85세 이상,
- 체력이 많이 약해지고(쇠약, frailty),
- 여러 질환·약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분들에서는
- 혈압을 너무 낮게 잡으면
- 어지럼, 실신, 낙상, 신장 기능 저하 같은 해(害)가 더 커질 수 있고
- 이 경우에는
- 목표 혈압을 느슨하게(예: 수축기 130–140mmHg 수준) 잡고
- 약을 줄이거나, 선택적으로는 중단하는 전략도 고민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고령·허약한 분들에서는
“무조건 세게 눌러라”가 아니라
‘이분에게 이 혈압이 정말 이득인가’를 다시 따져보는 게 맞습니다.
물론 이 역시
환자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주치의와 상의해서 조정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끊는 사람 vs 끝까지 먹는 사람”의 결정적 차이
결국 중요한 건
“끊었느냐, 안 끊었느냐”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절차를 거쳐
약을 줄이고, 유지하고, 다시 늘리느냐” 입니다.
위험한 쪽 – 임의로 끊는 사람
공통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 혈압이 좋아지면
“이제 다 나은 것 같다” 하고 혼자 끊음 - 집에서 혈압을 거의 재지 않거나,
재더라도 기록·경향을 보지 않음 - 다른 약(당뇨약, 콜레스테롤약 등)도
필요할 때만 띄엄띄엄 복용 - 혈압이 다시 올라도
두통·어지럼 같은 증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김
이런 패턴이
심근경색·뇌졸중·심혈관 사망이 늘어나는 쪽과
계속 겹쳐서 나옵니다.
안전한 쪽 – 끝까지 먹거나, 계획적으로 줄이는 사람
반대로, “관리되는 끊기”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 “혈압이 잘 나온 건 약 덕분도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 끊고 싶으면
- 먼저 체중·식단·운동·수면·음주를 6~12개월 이상 바꾸고
- 그다음
- 주치의와 상의해서
- “어느 시점에, 어떤 약을, 얼마나 줄일지” 계획을 세우고
- 줄이는 동안
- 집에서 주 2–3회 이상 혈압을 재서 기록
- 외래 진료 때 데이터를 들고 가서 함께 판단
- 혈압이 오르거나, 위험 신호가 보이면
- 다시 약을 늘리는 것을
- “실패”가 아니라 ‘위험을 미리 막은 성공’ 으로 받아들임
같은 “끊기 시도”라도
한쪽은 도박이고,
다른 한쪽은 치료 전략의 일부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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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체크해 볼 수 있는 간단 정리
“약을 계속 가져가는 쪽이 맞는 경우”
아래에 여러 개 해당하시면,
약을 끊기보다는 꾸준히 잘 맞는 약을 찾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콩팥병, 말초동맥질환 같은 병력이 있다
- 진단 당시 혈압이 160/100mmHg 이상이었다
- 당뇨·고지혈증·흡연·비만·가족력이 겹쳐 있다
- 60–65세 이상, 특히 70대 이후이고
일상생활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하고 있다
“감량·중단 시도를 의사와 상의해 볼 수 있는 경우”
아래에 많이 해당하시면,
“끊자”가 아니라 “한 번 논의해 볼 수는 있다” 정도입니다.
- 경증(1기) 고혈압에서 시작했고
- 뇌·심장·콩팥 손상 소견이 없다
- 6~12개월 이상 체중이 줄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집에서 재는 혈압이 120/80 안팎으로 꾸준히 나온다
- 약 부작용으로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하다
- 주치의가 전체 위험도를 보았을 때 “저위험군”이라고 판단한다
어떤 경우든 공통
- 본인 마음대로 약을 끊는 건 안 된다
- 줄이거나 끊는 기간에는
- 가정혈압을 꼼꼼히 재고 기록해야 하고
- 수치가 오르면 다시 올리는 것을
“실패”가 아니라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것으로 보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혈압약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평생 관리의 한 축입니다.
다만 생활습관을 정말로 바꾸고,
위험도가 낮은 소수의 경우에는
의사와 함께 계획적으로 약을 줄이거나 잠시 끊어볼 여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평생 먹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평생 동안 혈압을 방치하지 않고 관리하느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