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가워지면 밭에서 가장 튼실하게 여문 배추를 골라 소금에 절입니다. 늦가을 햇볕에 붉게 말린 고춧가루, 곰삭은 젓갈, 알싸한 마늘과 생강, 푸른 기운 머금은 파가 버무려져 배추 속 깊숙이 스며듭니다. 그 붉은 기운은 단순한 색을 넘어 겨울을 견디고 이겨내게 하는 생명의 기운입니다.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혹독한 겨울을 살아내기 위한 한국인의 오랜 지혜이며, 가족과 이웃이 함께 온기를 나누는 따스한 정입니다.
김장은 왜 하필 겨울의 길목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배추는 추위에 강한 작물입니다. 서늘한 기온에서 단단하게 자라는 배추는 영하의 날씨에도 견디지만, 기온이 22도를 넘어서면 흐물흐물 짓무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1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수확하는 김장 배추는 잎이 많고 속이 꽉 차 무게도 무겁습니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란 김장 배추는 그 어떤 계절의 배추보다 맛이 좋습니다. 김장은 이렇게 가장 맛 좋은 배추로 담가 1년 내내 풍요로운 식탁을 책임지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김장 김치의 톡 쏘는 시원한 맛, 그 깊은 맛의 비밀은 바로 유산균입니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잡균들은 사라지고 소금기를 좋아하는 유산균만 살아남아 김치를 익힙니다. 잘 익은 김치 국물 한 모금에 퍼지는 청량함, 톡 쏘는 맛 또한 유산균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김치의 맛이 절정에 달하는 적숙기에는 배추 줄기 하나에 1억 마리가 넘는 유산균이 살아 숨 쉬며 김치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김치 유산균은 추운 겨울 땅속 온도인 영하 1도에서 그 수가 늘거나 줄지 않고 맛있는 김치 맛을 유지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김장독을 차가운 땅속에 묻었던 이유, 그리고 오늘날 김치냉장고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장은 단순히 먹거리를 저장하는 행위를 넘어, 우리 민족의 정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전통입니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김장을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김치를 버무리고 돼지고기 수육을 나눠 먹으며 힘든 시간 속에서도 서로 돕고 나누었던 김장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김장은 한국인의 삶과 정신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김장 문화는 점점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김장을 직접 담그는 가정이 줄어들고, 대신 간편하게 사 먹는 김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손수 재료를 다듬고 버무리며 가족과 이웃이 함께 만들어낸 김장 김치 한 포기에는 그 어떤 음식보다 깊은 맛과 정이 담겨 있습니다.
올해 겨울, 잊혀 가는 김장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김장을 하며 옛 추억을 공유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합니다.